역사이야기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이 다른 곳에 세워질 뻔 했다?

케렌문 2025. 3. 18. 10:33

1.우간다 계획

러시아의 반유대주의에서 시작된 유대인 탄압으로 유대인들은 러시아를 빠져나와 유럽 각국과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영국으로도 많은 러시아 거주 유대인들이 몰려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시 영국 식민지 장관이던 조지프 체임벌린이 영국으로 몰려드는 러시아 거주 유대인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영국령 우간다에 있는 마우고원의 약 13,000제곱킬로미터의 땅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제안했다. 결국 1905년 시오니즘 총회는 내부 논의를 거쳐 이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윈스턴 처칠이 홀로코스트를 피해 망명한 유대인들의 피난처로 영국령 우간다를 다시 제시했지만 시오니즘 총회는 거부했다.

2.마다가스카르 계획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에 기인한 종교, 정치, 사회, 문화적 관습으로 유럽내 소수자 집단으로 존재하면서 유럽 곳곳에서 미움을 받아 왔다. 그 끝판왕이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였다. 히틀러도 처음에는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할 생각이 없었다. 히틀러는 유럽에 있는 유대인들을 인도양에 있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섬에 집단 이주시킬려고 계획했으나 당시 영국이 수에즈운하를 막고 있어서 실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전부 죽여 없애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이스라엘이 아프리카 우간다나 마다가스카르에 세워졌다면 오히려 중동에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곳에서도 주변 민족과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켰을까?

3.새로운 한국 건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략으로 거의 절망에 빠지자 미국에서는 한반도를 포기하고 '뉴코리아플랜'을 세웠는데, 남태평양 서사모아섬에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을 이주시켜 '뉴코리아'를 세우려고 했으나, 미8군사령관 워커중장이 강력히 반대하여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당시 절망적인 상황에서 맥아더마저 남한을 포기하는 것을 고려했는데 워크중장이 반대했다. 워크중장이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워크중장은 제8군 사령관으로 재임 중에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순직하였다.

4.한국도 해외영토를 가지고 있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은 농업 이민을 위해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주(州)에 위치한 여의도 면적의 70배에 달하는 무려 2만8천94㏊의 랴흐타마우카 농장을 211만 5,067달러에 구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막성기후에 토양엔 염분이 있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토질이어서 엄청난 개발비용을 대지 못하여 지금까지 거의 방치한 상태로 있고 해마다 관리비로 1만2천불을 아르헨티나 정부에 납부하는 실정이다. 이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정부파견조사단은 대충 조사하여 도저히 농사지을 수 없는 땅을 현지 브로커에게 사기당해 말도 안되는 비싼 가격에 구입하였다. 

이 농장 뿐만이 아니라 1980년 칠레로부터 구입한 테노농장이 있다. 이 농장의 경우는 보사부가 땅을 구입한 후에야 칠레 정부가 농업이민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이없는 사례이다. 따라서 농업이민은 아예 시도조차 못하고 1988년부터 지금까지 현지인에게 임대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또 브라질 고야주에 위치한 십자성 새마을농장은 박정희 정권의 야심 찬 개발 프로젝트임에도 농장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발생해 결국 브라질 정부에 기증해야 했다.

5.러시아 연해주에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었다

러-우전쟁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러시아 극동지역인 하바로브스크로 대거 이주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들을 반역자라고 부르고 있다. 자발적으로 이주한 난민도 있을 것이고 반강제적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다. 100여년 전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거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적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러시아 극동지역에 우크라이나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젤레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내전의 혼란기를 틈타 극동지역 러시아 아무르강과 연해주 일대에 우크라이나 이주민들이 건국한 국가이다. 1917년에 건국하였으나 1920년 소련에 의해 멸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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