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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후예는 누구인가? 본문

역사이야기

고조선의 후예는 누구인가?

케렌문 2025. 3. 17. 10:33

국조 단군(밝은 땅에 오신 임금이라는 뜻)께서 하늘의 선민들을 거느리고 아사달(아침의 땅,시작의 땅이라는 뜻)에 도읍을 정하시고 조선을 개국하시었다. 

우리 민족은 몽골리안의 일파로서 오랜 역사 동안 동이족이라 불리어왔다. 동이족은 원래 쥬신족이라 불리어 왔는데 이 쥬신이라는 말이 한자로 표기되면서 조선,주리진,주진,숙신,여진 등 소종족에 따라 여러말로 나뉘어져 온 것이다. 쥬신족은 크게 나누어 조선계와 부여계로 나눌 수 있는데, 부여계로서 북부여계,동부여계,남부여계,구려계로 나눌 수 있고, 조선계로는 삼한,숙신,예맥,말갈,여진,거란,동호계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고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이렇게 세부적으로 파가 나뉘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의 족보에도 대동보가 있고 가계보가 있듯이 민족이 분화되기 이전에는 대동보 위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소종족들이 고조선 멸망후 각기 독자적인 세력으로 나라를 세웠는데 부여계의 주류가 부여와 고구려,백제를, 삼한계의 주류가 각각 가야,신라,백제를 세웠다. 그런데 백제의 경우는 지배층이 부여계이고 피지배층이 마한계 주민들이다. 신라와 가야도 진한과 변한의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지배층은 북으로부터 이주해 온 흉노 계통의 기마민족이었다.

대한민국이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어 온 것은 사실이나 신라 삼국통일 후 신라중심의 역사와 그 뒤를 이은 고려가 역사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옛조선과 고구려의 후예들인 여진과 거란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다행이도 발해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일부로 남겨 두었다. 고조선에는 부여계 주민들의 대부분과 조선계의 거란,말갈,여진이 주로 참여하고 있었고 삼한계의 주민들은 고조선의 세력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난 이후에도 이들 세력들은 부여,고구려의 주민들로 참여하였고, 뒤이은 발해와도 직접 참여 또는 연맹관계를 형성하여 왔다.

거란과 말갈,여진은 고구려 멸망후 각기 독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거란과 흑수말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말갈과 여진족도 발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였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할 때 말갈족 지도자 걸사비우와 거란족 지도자 이진영이 고구려 부흥운동으로 발해건국을 도왔다는 것은 이들 종족이 고구려의 후예임을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대조영의 출신에 대해서 각기 다른 의견이 있는데 구당서에는 대조영은 고구려 별부 출신이라 하였고 신당서에는 속말말갈 출신의 걸걸중상의 아들이라고 하였다. 과연 대조영이 고구려 출신인지 말갈 출신인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말갈도 고구려의 주민이었으므로 대조영은 고구려 출신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거란과 여진이 고조선의 후예라는 증거는 또 있다. 902년 야율아보기가 발해에 사신을 보내어 함께 중원을 정복하자는 권유문에도 야율아보기는 스스로 단군성조의 후예임을 나타내고 있고, 발해 멸망후 고려에 대해서도 사신과 낙타를 보내면서 우리는 다같은 단군성조의 후예이니 형제끼리 잘 지내자고 화의를 제의하였고 고려가 이를 거절하자 고려는 신라의 뒤를 이은 나라이고 거란이 고구려의 뒤를 이은 나라이니 마땅히 고려는 송나라를 버리고 거란을 따라야 한다면서 세차례에 걸쳐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여진도 마찬가지이다. 금나라도 그 시조가 고려인임을 스스로 밝히고 있고 후금을 세운 누루하치나 청태종도 조선에 대하여 위와같은 주장으로 조선을 압박하여 왔다.

이렇게 볼 때 고조선은 고구려로 이어졌고 고구려는 대진국(발해)으로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는데 발해 멸망후 과연 누가 고구려의 진정한 후계자냐 하는 논란이 남게 되었다. 발해부흥운동으로 정안국이 세워지기도 하였는데 정안국은 부여족 대씨와 여진족 열씨가 함께 주도하여 세운 나라이다. 고려는 당연히 자신들이 유일한 고구려의 적통임을 내세웠고, 거란과 여진의 주장은 고려는 그 주민의 대부분이 삼한지역의 주민이고 고구려계는 일부밖에 되지 않으므로 신라의 뒤를 이은 나라이고 다른 민족인 중국의 한족과 결탁하였으므로 기마민족의 고유의 전통을 계승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거란 자신이 옛고구려 영토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고 기마종족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므로 마땅히 자신들이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이상과 같이 거란과 여진도 고조선의 후예임이 틀림없고 대동보 차원에서는 같은 한민족이다. 다만 차이점은 거란과 여진이 대동보 위주로 연맹체를 구성할 것을 주창한 반면 고려나 조선은 중국과 더 가까워지면서 소중화되어 가계보 위주의 독자노선을 주창하였다는 점이 다르다. (참고로 촌수로 따지면 여진이 4촌쯤되고 거란은 6촌쯤 된다고 보면 된다) 후금을 건국한 누르하치는 만주 지역에 흩어져 있는 여러 민족을 통합하고자 여진족을 모태로 하여 나머지 민족들까지 통합하여 만주족이라 하고 더이상 여진족으로 부르지 못하도록 했다.

혹자는 거란과 여진이 우리민족의 일부라는데 대해 거부감을 보이기도 하나 소가계보 차원에서 보면 아닐지 모르나 대가계보 측면에서 보면 같은 핏줄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이들이 비록 고조선과 고구려의 피지배층으로서 구성원으로만 참여 하였다고 하여 우리민족이 아니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민족의 개념을 지배층 위주로만 판단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낳을 수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만약 삼국이 통일이 되지 않고 지금까지 각기의 독립국가로 존속하여 왔다면 그 국민은 각각 고구려족,백제족,신라족으로 불리면서 서로 다른 민족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겠는가? 냉정하게 따져보면 거란과 여진은 고조선의 주민이었으므로 고조선의 후예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삼한은 고조선의 직접적인 주민이 아니므로 신라나 백제가 고조선의 정통후예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의 한국 국민은 한어군 계통(삼한)의 주민이 70%를 차지하고 있고 부여계통이 20% 여진계통이 5%(주로 함경도 사람) 기타가 5% 정도이다. 우리의 역사는 가계보 위주의 역사로 축소되어 있는 셈이다. 하기야 고조선과 고구려의 구성원 대부분이 지금은 핏줄이 다른 중국국민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대동보의 역사를 주장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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